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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과박쥐

숲뱃//회사원이 가진 어둠 본문

단편

숲뱃//회사원이 가진 어둠

외계인과박쥐 2017. 6. 20. 00:27




#연예인이 주운 태양 속편




술주정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성립할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처음본, 본인에게는 아주 익숙하고 친근감까지 느껴지는 연예인이라지만 원나잇에 큰 의미를 둘 정도로 순수하지도 않았고.


"브루스. 그만 일어나야지."


그럼에도 한달째 클락 켄트는 브루스 웨인의 가정부일을 착실히 하고 있었다. 애벌레처럼 몸을 웅크린채 클락의 손길을 피하며 잠을 쫒아가는 모습이 인쓰러웠지만 이 이상 늦으면 매니져가 올라올 시간이었다. 매몰차게 이불을 뺏곤 몸위에 올라타 양손목을 잡아 올렸다.


"으우~ 아저씨-"

"밥먹어야지. 응?"


억지로 깨는 잠에 짜증이 나는지 허리를 뒤틀어보지만 클락의 덩치와 체중은 잠결에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부쩍 한숨이 늘았다고 생각하며 고개룰 숙여 브루스의 입술을 물었다. 건조한 입술을 핥아 촉촉하게 만들고 살짝 벌어진 입안에 혀를 밀어넣으며 자꾸 숨는 혀를 쫒아 집요하게 문질렀다. 입술에 막혀 억눌린 짜증이 클락의 입안에 퍼졌고 이내 숨이 막히는지 클락이 잡은 손목이 연신 흔들렸다.


"하아-, 하-"

"잘잤어 브루스?"

"으... 저혈압 깨우는 방법 진짜 바꾸라니까-"


겨우 한쪽 눈만뜬채 체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로하는 불평이 귀여워 절로 고개를 다시숙여 버드키스를 날린다. 첫날 쪽팔리고 어이없고 부끄러웠던 감정은 어느새 사라졌고 입맞춤이며 키스, 그리고 섹스까지도 너무나 자연스러워졌다.

무거우니 꺼지라고 바둥거리는 브루스머리를 헝클이곤 비켜줬다. 억지로 잠을 깨운게 못내 화가 났는지 침대위에 가득한 새하얀 베개들이 클락에게 날라왔다. 몇개는 맞아주고 몇개는 피하며 욕실로 밀어넣고 익숙한 침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방송에서 보는 브루스 웨인과 방송 외에서 보는 브루스 웨인은 너무 달랐다. 방송에서는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성숙하고 조용하며 배려심이 넘치고 확고한 신념의 브루스 웨인이었는데 방송 외의 브루스 웨인은 또래처럼 장난끼도 많았고 욕심도 많았으며 검은양말과 하얀양말을 놓고 한시간이 넘게 고민하는 우유부단함을 뽐내는 브루스 웨인 이었다. 간단히 차려논 토스트가 식어가는 걸 지켜보다 자리에 일어나 욕실문을 열었다. 얼마전에 바디워시를 종류별로 사온 것을 봤기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브루스. 아직도 고민중이야? 늘 쓰던거 먼저 쓰라니까."


샤워부스에 서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여섯개나 되는 바디워시를 지긋이 바라보는 모습에 결국 또 한숨이 나오며 웃통과 바지를 벗어 수건 걸이에 걸고 다가갔다. 물을 끄고 샤워볼에 아카시아 향이라 쓰인 바디워시를 덜어 거품을 내고 사정없이 브루스의 등서부터 문질렀다.


"아, 민트향-"

"늦었다고 너. 이러다 토스트도 못먹겠어.팔."

"민트향 쓰고 싶었는데-"

"그런것 치고 너 복숭아향 보고 있었거든? 다리."

한두번 있는 일이 아닌듯 팔을 뻗고 다리를 덜렁들고 수발을 받는 브루스와 익숙하게 사타구니 안쪽까지 문지르고 닦아주는 클락이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칼을 열심히 쫒아가며 수건으로 말려주고 입에 토스트를 물려주고 나서야 긴장감이 풀렸다. 초반에 식사 챙기기 힘들면 안챙겨도 된다고 했던게 클락을 위한게 아니라 본인이 먹기 싫어서 배려해주는 척 한거라는 것을 깨닫고서 악착같이 들인 습관이었다. 운동화 색을 또 세월아 내월아 고르기 시작해 민트색 캔버스화를 꺼내주자 이번엔 만족했는지 얌전히 신는다.


"저녁은 좋아하는 스테이크 할테니까 8시 전까지 꼭 들어오고."

"촬영이 빨리 끝나면-."

"저번처럼 매니져 등에 실려오지 말고."

"웃겨. 그 다음날 나 허리 아파서 못일어났거든요? 술취한 사람 한테 덤비지나 말라고요."

"아저씨 질투 엄청난거 알면서 누가 업혀들어오래?"

"으, 질척거리는 아저씨야."

"다녀오고."


키득 거리는 브루스의 볼에 입맞춤하자 토스트를 우물 거리던 입이 멈추곤 입술에 닿아온다.


"갔다올게요 아저씨~"


문이 닫히고 커다란 집에 클락만이 남았다. 설거지를 하고 물바다가 된 욕실을 청소하고 세탁기에 쌓인 옷들을 빨고 널고, 개고. 모든 집안일을 끝내고 커튼을 묶고 창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60층 짜리의 꼭대기 팬트하우스에 위치한 브루스 웨인의 집. 도시전경이 보이는 발코니에 커다란 수영장이 있었고 발코니의 아치형의 계단을 오르면 작은 정원이 있는 전형적인 부자들이 살법한 이 커다란 곳에 혼자있는게 여간 외로운게 아니었다. 브루스가 촬영을 가고 혼자있는 시간도 이렇게나 힘든데 제가 오기전까지 늘 혼자 였던 브루스를 생각하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술에 취해 진상을 부리는 저를 데리고 갈만큼 이 집은 너무 고요했다. 그덕에 클락은 멀쩡한 제집을 놔두고 이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 날. 어버버 거리며 아프다고 칭얼 거리는 브루스를 겨우겨우 씻겨주고 지저분한 방을 치우고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 거리를 다 치우고나서 현관 앞에 섰을때의 그 감정이 잊혀지지 않았다.

클락이 가고나면 이 커다란 집에 브루스 웨인은 혼자라는 생각. 이유도 없이 어릴적 제방에서 키웠던 작은 새가 떠올랐다. 클락이 오지 않으면 혼자 새장에 갇혀 있어야 했던 작고 불쌍한 나의 새.

모양과 크기만 다를뿐 이 커다란 새장 속에서 대중을 위한 이미지로만 소모되는 브루스 웨인이 자꾸 떠올라 결국 눌러 앉았다. 집에선 아무것도 안했는지 냉장고는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먹다남은 인스턴트 식품이 가득했고 물도 채우지 않은 수영장은 먼지로 가득, 올라간 작은 정원엔 잡초만 무성했다. 수영장을 청소하고 물을 채운 것만으로도 촬영을 다녀온 브루스는 무척 좋아해 주었다.

'우와, 아저씨 짱이다'

'그 아저씨 소리 좀 안할 순 없어?'

'클락-'

'....아저씨가 좋겠어.'

'푸하!'


브루스는 연예인용 미소로 빙긋 웃으며 제 이름을 불렀고 그 미소에 쑥쓰러워하는 제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순식간에 지어낸 표정이 아닌 활짝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아이같은 미소 덕에 코가 꿰인거리고 클락 켄트는 생각했다.

외로워서 길거리의 남자를 주워온 연예인은 참으로 외롭고 정적인 남자였다고.


*


"....브루스!!!"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화가 머리끝까지난 클락의 고함과 함께 집안을 가득 채웠다. 거울 앞에서 부들부들 떨다 바지 버클만 채우고 문 밖으로 냅다 달렸다.


"으악! 밖까지 쫒아오는 거에요?!"

"너 진짜 잡히기만 해!!"


가슴팍에 커다랗게 새겨진 [브루스 웨인꺼] 라는 낙서가 키스마크 위에 남아있었다.


"안지워 지잖아!"

"그러는 아저씨도 똑같으면서!"

"야! 나는 안보이는데다 한거고!"

"몰라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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