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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과박쥐

숲뱃//청혼 한조각 본문

단편

숲뱃//청혼 한조각

외계인과박쥐 2017. 6. 6. 19:56



By.이름은 비워둘 수 없습니다.



×젊숲늙뱃





농장에는 황금빛 밀이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나무로 만든 이층집은 들판의 해바라기 꽃과 어울려 동화속 풍경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영원을 맹세한 부부가 함께 사랑을 속삭이며 서로만을 위해 사는 일생.

클락 켄트가 바라는 노후였다.


"......"


폭신한 사무실 의자에 발을 올려 무릎에 턱을 올려 가만히 제 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양팔로 다리까지 감싼 모양새는 어린 얼굴을 더 어려보이게 했고 입술까지 한데 모아 움찔움찔 움직이는게 철부지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비록 빨간 망토에 파란 쫄쫄이를 입고 있어 안어울려 보였지만.

이런 남자의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온통 온몸을 새까만 망토와 갑주로 가린 사내는 복잡한 수식이 가득한 화면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할말있으면 해."


세계의 명탐정이자 눈치도 그만큼 빠르고 엑스레이비젼이 없다는게 거짓말 같은 남자가 말했다. 굵은 목소리에 어깨가 움찔거렸지만 그냥 가만히 남자의 등을 바라봤다.

언제였을지 생각해보고 있었다. 넓은 등을 가진 저 남자를 바라볼때 마다 저의 멀리있던 꿈이 코앞으로 다가와 생각나게 되었는지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상상력은 더 커져서 그 농장의 해바라기 밭 한가운데서 노을을 등지고 저를 바라보는 남자가 아른거릴 뿐이었다.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 무릎에 눌려 목소리가 웅얼웅얼 울렸지만 그저 더 고개를 숙였을 뿐이다. 결국 눈앞의 자료를 보던 남자가 몸을 돌려 섰다.


"클락."

"브루스 할일 해요. 나는 그냥 여기 있을게요"


저도 알고 있었다. 어차피 이 관계는 저의 끊임없는 조름으로 이어진 관계라는 것을. 졸라서 눈앞의 남자와 연인이 되었고 졸라서 남자와 데이트를 하고, 조르고 나서야 집에 초대를 받고. 아, 그의 배트케이브는 예외였다. 무작정 찾아오면 이렇게 제 의자에 앉아 있을 수 도 있었다. 미소로 반겨주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떠오르자 미간이 찡그려졌다. 그리고 조금 제 처지에 화가 났다. 저는 왜 이렇게 어려서 이런 행동밖에 못하는지, 그덕에 코앞으로 다가온 남자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불쑥, 제 얼굴이 남자의 양손에 잡혀 올려졌다. 눈이 동그래지며 시선을 바라보자 잔뜩 피곤하지만 버터처럼 부드러운 미소가 저를 향해 있었다.


"미안해요. 피곤할텐데 이렇게 찾아와서."

"연하애인 생기면서 감수한 거야."

"그렇게 차이 나는것도 아니잖아요."

"클락. 족히 10살이상이나 차이나."

"브루스는 신체나이도 얼굴도 젊잖아요."

"......"


제 입술이 삐죽 튀어나오는게 느껴졌지만 내버려 두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저를 봐주기 시작했으니까 아무렴 어떠냐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속 한켠에서 언제 철들거냐는 질책이 피어났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모으고 있던 두 다리를 내리고 남자의 허리를 당겨 제 무릎위에 앉혔다. 질색하는 행동 중 하나였지만 저는 좋아하는 행동이었다. 나이차이 때문에 보통연인이 하는 행위는 제한 되있어서 더 좋아하고 있었다. 이대로 둥둥 떠오르면 제게 더 기대오는 남자를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얌전히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눈만 올려 바라봤다.


"우리 언제 결혼해요?"

"...... 무슨 생각을 하나 했더니."

"나는 꿈이 있어요. 그리고 꼭 그걸 브루스랑 하고 싶구요. 그러니까 결혼해요."

한숨을 쉬는듯 가슴이 크게 오르내리는 것을 온전히 느끼며 조금 더 꽉 품에 안았다. 남자가 제게 할 말이 귀에 선했다.


"클락, 결혼은 좀 더 나이를 먹은 후에-"

"저도 먹을 만큼 먹었다구요!"


고개를 번쩍들어 남자를 올려다 봤다. 이제 한두가닥 새치가 자라는 남자는 난처한 표정으로 저를 내려다 보고 있었고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저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미간을 와작 구기고 있었는지 남자의 커다란 손이 제 이마를 살살 쓰다듬었지만 표정을 풀지 않았다. 남자처럼 조곤조곤하게 설득할 수 없었으니 철부지처럼 또 조르고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브루스는 결혼에 대한 꿈 없어요? 브루스가 꿈꾸는 결혼생활은 없냐구요."

"...있었지."

"과거형 말고요. 지금요. 지금 눈앞에 제가 있잖아요. 네? 애인인 내가 있잖아요."


저도 알고 있다. 제 사랑을 받아달라고 조르고조를때 그가 가시처럼 저를 대하던 그 때, 체념하듯 저를 받아줄 수 없다며 말해준 그의 일생을. 머리는 이해하고 있었다. 이 남자와는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에서야 조심스럽게 영원한 함께를 말 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사귈수록 제 마음은 더 커지기만 했고 간절해 지기만 했다. 이렇게 또 남자의 속에 상처를 주면서 비집고 들어가려고 아등바등해졌다. 당신의 과거 따위 저는 필요없다고, 자기만 바라봐 달라고. 남자의 얼굴이 이제는 창백해져 있었다.


"브루스. 나는 몰라요. 아무리 브루스가 말해줘도 모른다구요. 나는 무척이나 이기적이에요.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클락, 그만해-"

"싫어요. 나는 항상 꿈꾸고 있어요. 당신과 단둘이 행복하게 사는 꿈을. 그 꿈에 슈퍼맨도 배트맨도 없어요. 그곳에는 브루스 웨인을 사랑하는 클락 켄트와 그런 클락 켄트를 사랑하는 브루스 웨인만 있죠. 브루스는요. 그런 꿈 없어요?"

손을 올려 남자의 목을 당겼다. 힘없이 딸려오는 그의 코끝에 입을 맞추고 가만히 시선을 맞췄다. 머뭇머뭇 달싹이는 입술을 바라봤다. 가볍게 제 입술을 맞추며 다시 그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 아직 남자보다 작은 체구지만 남자는 편하게 제 품에 기대었다.


"......그냥. 그냥 너와 이렇게 있는거야. 둘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이렇게 앉아서 서로의 하루일을 말하고... 수고했다고 말하면서 키스하고... 별거 없어."

"그거면 되요. 브루스도 있잖아요. 나랑보내는 결혼생활."

"....정말이지.. 연인이잖아. 그런거 생각 안할 수 없다고."


굳이 꼭 말하게 했어야 했냐고 투덜거리는 눈빛에 활짝웃었다. 귀가 말갛게 붉어진 남자는 너무나 예뻐서. 정말 좋았다.


"결혼해요 브루스."

"클락."

"나는 브루스 말대로 아직 어려서 더 하고 싶어요. 브루스는 너무 매력적이고 그 누구에게도 사랑 받고 있어서 저를 버릴것 같으니까 붙잡아두고 싶어요."

"하아-, 그런 쓸데없는 이유로."

"나한텐 아니에요. 나는 정말 그런 이유들로 불안해요. 그래서 외계인이니까 나한테는 필요없고 브루스는 신경도 안쓰는 거지만 그래도 부부라고 인정해주는 그 이상한 법으로 브루스에게 족쇄를 꼭 채우고 싶어요."


끌어안은 손을 풀고 남자의 손에 제손을 깍지꼈다. 가만히 빨라지는 남자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눈꼬리를 휘며 웃는다.

이러나저러나 저를 받아준 남자다.
저를 사랑해주는 남자다.

제가 사랑하는 남자다.


"...그래."

"브루스."

"그래. 클락. 우리 결혼하자. 그래.."

"꼭 행복할거에요. 당신은 내품에서 행복 할 수 밖에 없을 거에요."


노을이 아름다운 그 농장에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머리칼이 새하얀 두 사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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