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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과박쥐

숲뱃//빛이 없는 사랑 본문

단편

숲뱃//빛이 없는 사랑

외계인과박쥐 2017. 6. 20. 21:28



그런 사람이었다.
철저하게 자기자신을 채찍질 하는 사람. 아무도 그를 탓하지 않고 원망하지도 않는데 알 수 없는 강박감에 휩싸여 쉴새없이 몸을 학대하는 사람이었다.

낮에는 낮을 사는 사람들의 희망을 주기 위해, 밤에는 지치고 힘든 어두운 사람들의 요람이 되어주기 위해, 새벽에는 혼돈으로 가득차 희망조차 꿈 꿀 수 없는 사람들의 아침을 찾아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리고 그속에 자신의 자리는 마련하지 않는, 그 흔한 한숨조차 쉬지 않는 남자.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아침해가 올라오는 시간에 겨우 저택으로 돌아가는 그 남자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너무나 예민한 사람이라 아무리 기척을 숨겨도 눈치채는 남자였지만 이때만큼은 저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만큼 몸이 혹사당하고 있다는 증거였고 언제 바스라질지 모른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저 죽지 않기 위해 집사가 건내는 영양소가 든 음료를 의무감으로 마시곤 빌런들의 움직임을 기록하고 온 세계에서 벌어지는 대소사를 챙기며 낮에 있을 회사의 업무를 파악하고 나서야 지친 몸을 이끌고 침실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목안에 꾹 막혀온다.

그 누구도 남자에게 부탁하지 않았음에도 남자는 매일매일 필사적이었다. 누군가에겐 평화로웠던 하루가 남자에게 씌운 족쇄는 이만큼이나 거대하고 이만큼이나 절박하고 악몽이었다.

[8살의 아이는 철없이 자신의 감정을 조르면 그것이 저주가 되어 되돌아온다고 믿은채 성장했다.]

겨우 잠이든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다 남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땅에서 살짝 떠오른채 조용히 잠기지 않은 창을 열고 새하얀 커튼 사이로 보이는 잠든 남자의 곁에 내려 앉았다. 헝클어져 있는 머리칼을 정리해주며 남자를 내려다 봤다. 잔뜩 찡그린 미간에 입을 맞추며 침대시트를 구명줄이라도 되는양 움켜쥐고 있는 손에 제 손을 겹쳐 올리며 부디 이 무거운 속박을 풀기 바라고 또 바랬다.

꿈속에서 조차 쉴 수 없는 이 남자가 제 전부였다.


"브루스."


희망의 상징인 슈퍼맨이 사랑하는 존재는 아주 작은 희망조차 가질 수 없는 몸을 한 사람.
바다의 심해와 같은 눈동자에서 절망이 투둑 떨어져 내렸다.

제 심장보다, 우주의 모든 생명보다 사랑스러운 나의 사람은 저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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