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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과박쥐

숲뱃//혼자하는 사랑 본문

단편

숲뱃//혼자하는 사랑

외계인과박쥐 2017. 6. 27. 12:10




#  #


어느 순간부터 말 수가 적어졌다. 마음같아선 아무말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상황이 그를 돕지 않았다. 직업은 말하는 직업이었고 그 외 활동에선 리더였기에 자신의 의사는 전혀 없었다. 데일리 플래닛의 기자였고 저스티스리그의 리더였다. 모든걸 다 포기하고 싶지만 억지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내일의 사나이. 저를 찾는 사람과 동료들이 없으면 대기권 밖으로 올라 허송세월을 보내기 시작한 남자.


"브루스..."


내일을 잃어버린 남자가 말없이 울고 있었다.
평범한 사고였다. 언제나 그렇듯 조커가 파티를 열었고 배트맨이 참석하는. 다른점이라면 조커의 파티에 브루스 웨인의 집사가 출석해 있었고, 배트맨은 강제로 초대된 집사의 모습에 절망하며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철옹성같은 배트맨의 마음이 산산히 부숴지고 잿더미가 되어 하늘에 흩날렸다. 배트맨에게 집사는 삶의 버팀목이었기에 인정할 수 없었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날 배트맨은 사라졌고 조커는 행복해 하며 죽었다.

우주에 있던 슈퍼맨만이 멈춰섰고 세상이 깜깜해졌다.


#  #


어김없이 태양은 떠올랐다. 아무것도 담지 못하는 눈동자에도 빛이 내렸고 아이컨택을 하듯 가만히 있던 남자는 이내 다시 지구 속으로 내려 앉았다. 간단히 에그 스크램블을 먹고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선 거울을 바라봤다. 깔끔하게 면도한, 심해와 같은 푸른눈의 남자가 보였지만 글쎄, 남자는 거울속의 남자를 인식하지 못했다. 헐렁한 정장을 입고 새빨간 넥타이를 메고 집을 나선다. 얼마가지 못하고 자리에 웅크리며 두눈을 꽉 감았다. 주변의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힐끔 거리며 거리를 두는사람, 멈춰서서 바라보는 사람, 괜찮냐며 다가오는 사람. 귀를 틀어막았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았고 귀에 들리지 않았으며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남자에게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제발... 제발.. 브루스..."


수많은 생명속에서 홀로남은 남자는 절망했고 초라해져갔다.


#  #


남자에게 찾아온 사랑이었다. 예전엔 로이스 레인이 있었지만 그녀에게서도 느끼지 못했던 충만감과 따뜻함이 남자를 틈하나 없이 감싸주는 그런 사랑이었다. 그는 자꾸 도망치고 숨었지만 그럼에도 맞잡은 손은 놓치 않아주었고, 남자가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게 되면 언제나 눈치채고 찾아와 따뜻하게 다독여주던 그였다. 사랑한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온몸으로 남자를 사랑해주던 그였다. 유일하게 남자를 지켜주던 사랑이었다.

어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서로 다른 시간을 가지고 있어도 마냥 좋았다. 그의 변해가는 머리칼에 입을 맞추고 하나둘 늘어가는 세월의 주름에 입을 맞추며 사랑을 속삭이는 나날을 그리면서 행복할 수 있었다. 남자의 품에 안긴채 따뜻한 몸을 식히는 그 순간조차 사랑하고 미소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단 한가지도 남자는 이룰 수 없게 되었다.

주변이 소란스러워 지는것도 느끼지 못하는 몸이 태양에 이끌리듯 떠올랐다. 비가 내리듯 남자의 눈가에서 눈물 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남자의 후줄근한 자켓이 떨어져내렸고 정장도 흘러내렸다. 앞 코가 닳은 구두가 둔탁한 소리를 내었고 회사에 가져가야 할 서류들이 바람이 흩어졌다. 파란슈트와 붉은 망토가 사람들 시야에서 사라졌다.

남자는 더이상 존재하고 싶지 않았다.


#  #


동료들이 찾아왔다. 그가 있었던 어두운 동굴이 시끌벅적해졌지만 이 소란을 잠재워 줄 그는 없었다. 남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문득 시선을 돌렸을때는 적막한 동굴에 홀로 서있었다. 남자의 곁에 오래도록 머물러주는 그도 없었다.

들이마시던 숨소리가 사라졌다.
불현듯 남자의 심장소리가 사라졌다.

조금만 더 하면 그의 곁에 갈 수 만 있을 것 같아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그럴수록 남자의 눈물은 멈출 생각을 못했다.

남자는, 그의 품에서 죽고 싶었다.


#  #


결국 남자는 동굴을 나섰다. 나설 수 밖에 없었다. 그 곳엔 결국 그가 없었으니 더이상 머물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바다속으로 가라앉았다. 머릿속에 그와 하지 못했던 일들이 욕심처럼 가득차버려 도망치듯 그렇게 가라앉았다.몸을 웅크리고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가렸지만 이내 입술이 일그러지고 눈가가 새빨개졌다.

남자는 심해의 바다속에서 절규했다.

제 사랑이 없었다.


#  #


아무리 울어보고 외쳐봐도 사랑이 사라졌다.
혼자서도 조차 기약없는 사랑을 할 수 없어졌다.

브루스 웨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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