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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과박쥐

숲뱃//외계인과 검은늑대 본문

중편

숲뱃//외계인과 검은늑대

외계인과박쥐 2017. 5. 24. 17:00

 

 

By. 이름은 비워둘 수 없습니다.

 

/

히어로와 소환령이 공존하는 세계관.

태어나 어느 정도 자아가 성립될 무렵 영혼의 파트너가 정해진다.

인간이 성장할 때 같이 소환령도 성장한다.

어느 특정 분야에 머물거나 월등히 뛰어난 기질이 성립할 때 그에 맞게 소환령의 능력이 변하고 소환할 수 있게 된다.

 

지구인에게만 성립된다.

/

 

+

 

클락은 기다렸던 적이 있었다.

어렸을 적, 아직 제가 우주의 다른 별에서 온 존재라는 사실을 모를 때에는 부모님의 소환령을 보며 저도 어서 단짝친구를 부를 수 있기를 기다렸었다. 저의 친구가 파 처럼 멋진 사슴뿔을 가진 소환령일까, 아니면 마 처럼 동화속 요정님의 날개를 가진 작은 소환령일까 하는 설레임 속에서 살았던 적이. 저의 정체성을 알게 된 날 그래도 혹시나 하며 소환령을 불러보았던 적이.

 

고개를 돌려 다이애나를 보았다. 반신인 그녀의 옆에 자리하고 있는 사자갈기를 떠올리는 머리칼을 하고 있는 소환령이 같이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불현듯 클락은 제 처지가 너무 안되보였다.

 

‘반신인 다이애나도 소환령이 있는데… 확실히 외톨이라고 인정받는 기분이네.’

 

성인이 되고 다른 히어로들과 힘을 합심해 저스티스리그를 결성하고, 모든걸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도 저의 모든 것을 나눌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허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슈퍼맨. 안 좋은 일 있어?”

“아, 원더우먼. 스티브는 갔네?”

“일이 있다고 하더라고. 흠, 소환령 때문에 그래?”

 

바로 제 상황을 캐치하고 물어오는 그녀에 씁쓸한 미소가 번진다.

 

“한번 불러보는 건 어때?”

“예전에도 안 나타나줬는데 지금이라고 나타나 주겠어? 헛수고야.”

“그래도, 혹시 알아? 우주에서 제일 강한 사나이라 늦게 맺어져 있을지.”

 

말을 끝으로 다이애나는 클락에게 보고서를 부탁하곤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 그녀의 뒷 모습을 바라보단 클락도 이내 하늘 위로 둥실 떠올라 리그로 향했다. 애써 오전에 나눴던 대화를 잊으며 임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두고 회사로 돌아가 밀린 업무를 마치고, 늦은 시간이 되고 나서야 집으로 향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저의 공간에 들어가 습관적으로 끼니를 챙기고 소파에 몸을 뉘었다. 틀어 논 방송에서는 오늘 슈퍼맨과 원더우먼의 활약이 보도되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소환령에게 집착하는 제 모습을. 소환령을 부르지 않고 생활하는 인간들도 많았다.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무리들도 있었고, 그들의 도움없이 모든걸 할 수 있는 클락이기에 딱히 찾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그럼에도 부르고 싶은 이유.

그리고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외로움.

 

클락은 이 지구에 소속되고 싶었다. 영원히 외톨이로 남고 싶지 않다는 슬픔이었다. 부모님이 있고 곁을 지켜주는 동료, 친구들이 있었지만 조금 더 근본적인 안식처가 필요하다고, 다이애나 처럼, 영혼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나타나면 좋겠다고.

 

“정말 거기에 있다면 제발 날 혼자 두지 말아줘.”

 

손을 뻗어 작게 속삭이며 눈을 감았다. 유독 외롭고 지치는 하루였다.

 

+

 

동백꽃과 하얀 수국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집사가 가져다 준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분명 휴식시간이었고 아직 정무를 보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앞으로 다가올 축제 때문에 보고서를 꼼꼼하게 읽고 또 읽어 내려갔다.

 

소환령들이 존재하는 세계의 제사장인 늑대.

지구에 나가있던 동족들의 귀환과 정화를 담당하고 있었고 그외에도 그들의 복식과 거리의 장식까지. 크던 작던 모든 일이 그를 거쳐 진행 되기 때문에 브루스 웨인은 일 중독자로 정평이 나있다.

윤기가 흐르는 커다란 검은꼬리가 가볍게 움직인다.

 

“…흠…”

 

보고서를 읽던 브루스의 시선이 잠시 왼손, 정확히는 약지 손가락으로 향했다. 어느 순간 가느다랗게 생긴 새빨간 실. 처음 실이 생겼을 때 브루스는 지구에서 저를 부르는 목소리를 무시했다. 본래도 업무가 많기도 했고 지구의 인간들이 모두 착하지 않고, 저희들을 이용해 악행을 저지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제가 돌아오는 그들의 혼을 완벽히 정화시키는 것은 힘들었고, 결국 제 부모님도 인간들의 욕심 때문에 영혼이 더럽혀져 돌아가셨다. 인간들의 악행에 쉽게 물드는 동족들이 가여워 교류를 끊고 싶기도 했지만 악인이 있듯 선인도 많았기에 그저 자신이 좀 더 노력하는 것으로 시간은 흘렀다. 그렇기에 자신은 실이 연결된 인간에게 건너가지 않았고 오래 지나지 않아 그 실은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전, 지금의 이 빨간 실이 다시 나타났다. 보통 손목에 매듭지어지고 생기는 가느다란 불투명한 색의 실이 아닌 약지 손가락에 리본처럼 넓은 붉은 실이.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실에 의아해 했고 관련 서적을 찾아봤지만 해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계약은 거절하겠지만 이런 실을 제게 묶은 인간을 보고는 싶었기에 저를 부른다면 한번 지구에 다녀오려 했지만 일단 이 실의 주인은 아직까지 저를 부르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소환령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실의 존재자체를 잊을 브루스였는데 무슨 이유에서 인지 요즘은 이렇게 제 손을 가만히 보는 일이 많아졌다.

 

이 신기한 연결에 브루스는 가만히 실을 건드려도 보고 오른손 검지에 감아보기도 하며 이례없는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여~ 브루스.”

“할, 멋대로 들어오지 말라고.”

“아, 그럼 노크라도 할 수 있게 담장 좀 만들어 두던가”

“하늘에서 날아든 주제에 담장 찾기는.”

“그럼 결계를 치 던가.”

“헛소리 그만하고 여기 온 이유나 말해.”

“재미없는 녀석. 자, 부탁한 명단.”

“빠르네.”

“언제 가져다 주냐고 닦달하는 일벌레인지 늑대인지 하는 녀석 때문에.”

“흥.”

 

커다란 날개를 접어 자연스럽게 맞은편 앉았고 익숙한 듯 브루스가 입도안댄 홍차를 마신다.

 

“아직도 먼저 가 볼 생각은 없어?”

“뭘.”

“그 실 주인한테. 어떤 녀석인지 안 궁금해?”

“난 바빠. 갈 시간 없어.”

 

고개를 휙 돌리며 말하는 브루스에 할이 기운 빠진 미소를 짓는다. 제 친구가 겪은 고통을 알고 있기에 이해는 하지만 너무 방어적으로만 행동하는 모습은 바뀌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검은 늑대주제에 창백한 피부 톤을 가진 브루스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마지막 남은 제사장의 늑대. 할은 제 친구가 마음을 풀고 쉴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지 말고 인간들 잘 시간에 몰래 가보는 것도-…?? 브루스?”

“왜 그런 표정…??”

 

두 소환령이 당황한 채 굳어 있었다. 길게 늘어져 축 늘어져 있던 붉은 실이 망토처럼 넓어지며 브루스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돼.”

“뭐야, 브루스. 너 진짜 그 실 괜찮은거 맞아?”

“날 부르고 있어.”

“뭐?”

 

브루스를 불러봤지만 할의 앞에는 제가 건넨 명단만 남아있다.

 

=

 

어이가 없었다.

이 한 문장으로 지금 심정을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브루스는 지금 생전 처음 보는 작은 공간에 앉아있었다. 눈앞에는 저리지도 않는지 손을 뻗은 채 잠들어있는 남자가 보였고 뒤에는 네모난 상자 같은 것에서 이상한 물체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고 있었고 잠시 뒤쪽의 이상한 물건을 바라보다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려 반듯한 이마, 구불구불한 머리칼, 기다란 속눈썹이 인상적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남자의 뻗은 손가락 약지에 매듭 져있는 붉은 실까지. 저를 부른 인간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보통은 브루스처럼 강제적으로 이동되지 않았고 인간이 부르면 소환령은 그 부름에 응할지 말지 결정하고 본인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의문투성이였지만 당황스러움에 제 귀가 바짝 서있는 것을 느끼며 일단 남자의 정보를 얻기 위해 실이 묶인 제 손을 뻗어 남자의 손바닥 위에 올렸다. 실이 넘실거리며 두 손을 감쌌고 브루스는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남자도 알지 못하는 고향의 별이 부숴지는 순간을, 지구로 넘어와 자신의 정체에 혼란을 느끼며 고통 받았던 순간을, 결국 헝클어져버린 본인의 마음을 외면한 채 허울좋은 가면을 쓰게 된 순간을. 영원히 외톨이라는 상처를 스스로 달래는 하루하루를.

 

“클락.”

 

저만큼이나 외로운 남자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보다 고개를 빼어 남자의 감긴 눈가에 입술을 대었다. 작은 바람의 일렁거림이 있었고 둘의 붉은 실이 좀더 진해졌다. 즉흥적이었지만 브루스는 상처 입은 존재를 외면할 수 있는 성품이 되지 못했다.

 

“잘 부탁해.”

 

실은 풀렸지만 닿은 손은 여전했다.

 

=

 

창을 타고 넘어오는 햇살에 절로 눈이 떠졌다. 손을 올려 눈가를 문지르고 멍하니 제 집의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까지 처리해야 하는 회사 업무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 불현듯 느껴지는 정체모를 기척에 몸이 굳었다. 아무리 정신적으로 지쳐 잠들었다고 해도 타인의 기척을 못 느끼다니, 클락은 제 정신머리를 조금 꾸짖고 몸을 공중에 띄었다. 그리고 소리소문 없이 자신의 집에 들어온 존재를 확인 한 순간,

 

“……”

 

방대한 기억들이 쏟아져 들어오며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상처투성이의 기억, 정화의 업무로 인해 벌어지는 고통들, 그 어디에서도 제가 쉴 곳을 찾을 수 없어 몸을 혹사시키는 일만 반복하는 하루하루.

 

“브루스..”

 

없을 거라 생각했던 제 반쪽의 존재는 생각보다 더 따뜻했고 생각보다 더 가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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